윤은기 한국협업진흥협회 회장·전 중앙공무원교육원장·경영학박사
윤은기 한국협업진흥협회 회장·전 중앙공무원교육원장·경영학박사

기부왕 소리를 들을 자격이 충분한 분이다. 1972년 삼영화학을 창업하여 이끌어온 이종환 회장(지난해 작고) 이다. 사업해서 번 돈으로 장학재단을 만들었는데 출연한 돈이 무려 1조 7,000억원이고 매년 100억원 이상 장학금을 지급하고 있다. 지금까지 장학금 혜택을 받은 학생이 15,000명이 넘는다. '관정이종환교육재단'은 아시아 최대 장학재단이다. 이 회장은 존경받아 마땅한 분이고 그동안 많은 사람들이 박수를 보냈다.

이 분이 창업하여 평생 이끌어 오던 회사가 전 직원을 해고하고 문을 닫는다는 뉴스가 나왔다. 참으로 충격적 소식이 아닐 수 없다. 이 회사는 최근 몇년동안 경영이 악화되어 자본잠식 상태로 알려졌다. 직원들에게 줄 퇴직준비금 마저 없다는 소식이다. 임직원들은 창업자의  무리한 기부때문에 회사가 문을 닫게되었다고 하소연하고 있다. 

기업인이 돈을 벌어 사회에 기부하는 일은 칭찬받고 존경받을 덕행이지만 기업이 부실화되어 임금을 체불하고 직원을 해고하는 것은 악덕중의 악덕이다. 기부왕이 운영하던 회사가 경영부실로 문을 닫는다는 모순적 현실을 어떻게 받아 들여야 하나?

경영부실 내용을 살펴보면 이해하기 어려운 게 많다. 회사 건물과 기계설비까지 장학재단에 기부처리한 탓에 그동안 회사가 재단에 임차료를 내왔다는 것이다. 이쯤되면 어느 회사라도 골병이 들 수 밖에 없다. 이 분의 본업이 기업인인지 사회사업가인지도 헷갈린다. 기업경영은 전쟁에 비유할만큼 경쟁이 치열하다. 혼신의 힘을 다 쏟아도 살아남는다는 보장이 없는 세계다. 기업인이 정체성을 잊고 딴 일에 매달리면 결국 문을 닫게 될 수 밖에 없다. 

기부왕이 운영하던 기업이 문을 닫는다는 뉴스는 우리사회에 엄청난 숙제를 던졌다. 사람들의 반응부터 살펴본다. 

'기부에 앞서 기업부터 잘 경영해야 한다'. '그래도 좋은 일을 했으니 존경할 분이다'.

'기부하는 방법에 문제가 있었다'. '의사결정을 너무 독단적으로 한게 아닐까'. '기업은 개인소유가 아니다'. 

이런저런 세평이 나오고 있다. 그러나 졸지에 직장을 잃은 임직원들이나 그 가족에게는 끔찍한 악몽이며 잔인한 현실이다. 

이 숙제를 풀기위해서는 '기업인과 기부활동'의 본질을 잘 살펴보아야 한다. 자본주의 초기에는 돈(자본)을 가진 사람이 기업을 차려 독단독선을 하는 경우가 많았다. 노동착취등 논란이 많았다. 점차 기업의 사회적 책임(CSR)이 대두되었고 모든 기업은 본업을 통해 사회에 공헌해야 한다는 공유가치창조(CSV)개념으로 발전하였다. '이해관계자 자본주의' 개념도 확산되었다. 기업은 대주주의 이익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투자자 임직원 거래처 고객 지역사회 관계자등 다양한 이해관계자의 이익을 함께 고려하며 경영하여야 한다는 개념이다. 

최근에는 환경 사회 투명성을 강조하는 ESG가 필수 경영과제가 되었다. 이처럼 기업은 '기업시민' 으로서 사회적 가치를 창출하는 것이 본질이 되었다. 동시에 기업인도 사회기부에 적극 나서게 되었다. 방법은 공익재단에 사재를 출연하여 사회공헌하는 방법과 개인이 직접 기부하는 것으로 크게 나뉘어진다. 또한 살아 생전에 꾸준히 기부활동을 하는 사람도 있고 유언을 남겨 사후에 기부하는 사람도 있다. 공개적으로 기부하는 사람도 있고 익명으로 기부하는 사람도 있다. 무엇이 최선책인지 정답은 없다. 기부자가 처한 환경과 인생관이 다르기 때문이다.

철강왕 카네기는 악덕 기업주로 수많은 원성을 들었다. 돈벌이에만 미쳤던 사람이다. 회사의 부당함에 항의하는 노동자들을 깡패들을 동원하여 탄압하였고 다수의 사상자가 나와도 꿈쩍도 안했다. 그러나 노후에 공익재단을 만들어 전재산을 모두 기부하였다. 그의 이름은 철강왕에서 기부왕으로 바뀌었다. 

빌게이츠는 위대한 기업인이며 기부문화를 바꾼 탁월한 인물이다. 기부한 돈이 어떻게 쓰이는지를 아는 수준이 아니라 가장 의미있는 곳에 쓰여질 수 있도록 사전에 계획하고 전략을 짜고 집행하고 평가해야 한다는 것이다. 거액을 기부하는 것은 거액을 버는 것 만큼 어렵고 중요한 일이다. 그는 직접 공익재단을 만들어 뚜렸한 목적을 가지고 기부활동을 하고 있다. 빈민국 아동들의 건강을 위해 설립된 국제백신연구소(IVI) 에도 거금을 출연했고 매년 기부를 한다. 몇백원짜리 백신으로 여러명의 어린 생명을 구할 수 있다. 이런 백신을 개발하고 보급하는걸 돕는 것이다. 그는 매년 집행내역을 보고받고 의견까지 내고 있다. 또한 워런 버핏등 뜻을 같이하는 기업인을 모아 기부연합체를 만들어 거액을 기부하고 있다. 이들이 기부를 많이 했다고 해서 기업이 타격을 받는 일은 없다. 능력범위 안에서 치밀한 계획을 세워 기부하기 때문이다.

모든 인간은 기부하며 살아가는 존재다. 거액이든 소액이든 누구나 기부하며 살아 간다. 돈으로 기부하고 물품으로 기부하고 재능으로도 기부한다. 기부는 인간의 아름다운 덕목이다. 상생의 사회를 만들어주는 영양분이다. 기부하는 사람은 기쁨과 보람을 느끼고 보는 사람은 기쁨과 감동을 느낀다. 이처럼 소중한 일을 더 지속가능하게 하는 지혜로운 방법을 찾아야 한다. 

"개처럼 벌어서 정승처럼 쓴다" 

이 오랜 속담은 무슨 뜻일까? 가난에 찌들어 살던 시절 모든걸 감내하고 악착같이 일해서 돈을 벌면 나중에 호강하며 살게된다는 것일까? 그런데 지금 세상은 수단방법 가리지않고 독하게 돈을 벌다가는 사회적 저항에 부딛치고 법의 심판을  받게 되고 본인의 심신도 망가지게 된다.  

"예술가처럼 벌어서 천사처럼 써라" 

언젠가 이런 수준의 기업가정신이나 기부문화가 다가올 수 있을까? 이종환 회장은 기부왕답게 거액을 기부하고 돌아가셨지만 동시에 우리 사회에 엄청난 숙제를 남겼다. 모두 함께 풀어야할 공익적 숙제다.

윤은기
한국협업진흥협회 회장 
중앙공무원교육원장(24대)
경영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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